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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대 초반에 출발하여' 40년대 텔레비전 탄생을 거치면서 새로운 형식과 내용을 갖춘 색다른 성격의 프로그램으로 성장해온 다큐멘터리에 대해, 〈웹스터(Webster)사전〉은 "어떤 사건이나 문화현상의 실제적 모습과 가치 등을 예술적 형식으로 기록하거나 묘사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다큐멘터리에 대한 정의가 학자마다 다른 것은 다큐멘터리가 작품의 형식, 기능, 목적에 따라 다양하게 구분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의의 문제에 좀더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주장했던 많은 학자들의 정의를 통시적(dischronic)방법으로 연구, 종합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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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다큐멘터리는 1922년 로버트 플레허티(Robert Flaherty)가 만든 〈북극의 나누크〉(Nanook of the North)이다.
그 당시 플레허티가 미지의 원시사회와 격리된 북극을 카메라에 담은 의도는, 오늘날의 영화제작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생존을 위해 척벅한 북극의 자연환경과 싸우는 그들의 특이한 모습을 미국인들에게 보여주고 잎은 충동에서 작품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새로운 제작방법과 형식으로 작품을 완성했는데, 이것이 다큐멘터리 제작방법의 최초 형태로서 다큐멘터리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성공이후 그는, 비슷한 주제와 형식, 접근법으로 아름다운 남태평양 섬을 배경으로 폴리네시안 원주민을 주인공으로 하여 두번째 작품을 제작하였다.
Documentary는'가르친다'라는 뜻의 라틴어docere 에서 유래한 것으로, document가 그 어원이다.
19세기 후반 〈옥스포드(Okford)영한사전〉에 따르면 documentary라는 용어는 교육(a lesson), 훈계(an admonition), 경고(a warning)를 의미한다.
그리어슨이 '기록자료로서 가치가 있다'라고 썼을때 그는 오늘날의 document - 사실적이고 근거가 있는 기록 - 의 의미를 생각하고 기록했다고 본다.
즉 단순한 풍경사진이나 기행영화와 진정한 의미의 기록영화를 구분하는데 사용되었던 프랑스어 'documentaire'를 생각했다고 본다.
플레허티는 다큐멘터리를 "발견과 폭로의 예술이다. 모든 예술은 일종의 탐사다"라고 정의한 반면, 그리어슨은 다큐멘터리를 "사실적인 것의 창조적 해석"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두 사람은 기본적으로 다큐멘터리의 소재, 주제를 현실세계에서 찾고 있다는 점에서 일치하지만, 기록하고 표현하는 기술, 즉 소재를 선택해서 처리하는 방법에서는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플레허티는 제작의 중요성을 현상과 상황을 있는 그대로 포착하는 카메라의 활동과 잠재력으로 보고, 가능한 오랫동안 관찰하고 많이 촬영하여 사실성을 높이는데 노력하였다.
편집의 왜곡을 의심한 그는,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정보와 공간의 연관관계를 가장 사실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Scene을 길게잡는 Iong takes 를 많이 사용하였으며, 편집은 2차적인 행위로 보고 가능한 한 절제하였다. 이와는 달리 그리어슨은 편집을 촬영된 필름일지 라도 작품제작에 도움이 된다면 편집과정에서 사용할수 있다고 말함으로써 플레허티와는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다큐멘터리는 여기에서 이미, 작품제작에서 어떤 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할 것인가 하는 관점에 따라 촬영자와 편집자, 다시말하면 플레허티와 그리어슨 간에 확연한 구별이 생긴다.
이것이 아마 다큐멘터리 정의에 대한 최초의 마찰이며 견해차이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러한 점은 기본적으로 다큐멘터리에 관해서 파생되는 여러가지 논쟁들, 즉 객관성과 주관성 사실과 픽션의 개념정리 문제와 연관되어 있고, 다큐멘터리가 사실을 해석하고 재구성하는데 작가의 의도와 가치관이 얼마만큼 개입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논란의 대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플레허티가 있는 사실을 발견하여 전달하는 것만으로 다큐멘터리의 의미를 한계지었다면 그리어슨은 있는 사실을 토대로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여 선전이나 교육과 같은 목적을 실현시키는 도구로 이용함으로써 다큐멘터리의 폭을 넓혔다고 할 수 있다.
그리어슨과 같은 시기에 활약했던 폴 포차(Paul Rotha)는 다큐멘터리에 대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인간의 삶을 창조적으로 그리고 사회적 의미에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다큐멘터리의 의도, 기능, 효과 등과 관련하여 새로운 정의를 내리고 있다.
그는 제작자의 의도가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이고 사회를 개량시키시 위한 것이라면 소재를 현실세계에 국한시키지 말고 배우와 스튜디오의 사용도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로차의 이러한 포괄적 정의는 전통적인 다큐멘터리 개념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며 이러한 관점의 발달은 그 이후 다큐드라마와 같은 새로운 형식을 창조케 했다.
그리어슨의 문하생이었던 라이트(Basil Wright)는 다큐멘터리를 "대중들이 공공정보에 접근하는 방법"으로 보고, 기능적으로 "정책반영의 최선봉자가 되어야 한다" 고 주장했다.
이것은 1930년대 영국사회에 대한 제작자들의 태도와 입장을 잘 반영한 것이다. 또 다른 영국학자 스포티스우드(Raymond Sporttiswoode)는〈영문문법〉이란 그의 저서에서 "다큐멘터리는 주제와 접근법에서는 산업적, 사회적, 그리고 정치적 관계를 포함한 인간의 주변관계를 극적으로 표현한 것이고, 기법적으로는 내용에 따라 형식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잭 엘리스는 "다큐멘터리는 사실적인 것을 기록하여 관객들에게 전달함으로써 가치관에 영향을 끼쳐 행동을 변화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
따라서 이러한 변화된 행동은 인간과 사회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된다"라고 주장함으로써 소재 자체보다는 관객들에게 미치는 효과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1948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세계 최초로 개최된 다큐멘터리 연맹회의는 "다큐멘터리란 경제, 문화, 인간관계의 영역에서 인간의 지식과 이해를 넓히고 그 욕구를 자극시켜 문제점과 그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이성이나 감성에 호소하기 위해 사실의 촬영과 진지하고 이치에 맞는 '재구성'을 통해 사실의 모든 면을 영화에 기록하는 방법을 말한다"라고 다큐멘터리에 대한 매우 포괄적인 정의를 내리고 있다.
결과적으로 볼 때 다큐멘터리는 사실적인 것을 기록하여 '어떤 무엇을' 전달하고자 한다. 이 '어떤 무엇의 전달방법'이 바로 다큐멘터리의 정의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다큐멘터리의 정의는 작가에 따라 다르고 시대의 흐름과 함께 변화해왔으며,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것으로 사실과 허구, 객관성과 주관성, 공정성과 불공정성의 문제가 논란의 대상이 되면서 발전해 왔다.
(www.megafone.pe.kr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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